피리
피리는 한국의 전통 관악기이다. 한문으로는 필률(觱篥), 한자로는 龠(피리 약), 笛(피리 적)으로) 쓴다.
겹서(겹혀, Double reed) 악기로, 대나무 가지로 만든 짧고 가는 관대에 역시 대나무를 깎아 만든 혀를 꽂아서 분다. 크기가 상당히 작아서 서를 분리하면 천으로 만든 필통에 들어갈 정도라 이야기한다.
크기가 이렇게 작은 데 비해 내는 소리는 무척 크고 아름답다. 실제로 국악을 잘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수연장지곡이나 유초신지곡 등 향피리가 편성되는 관현악을 들으면 거의 피리 소리밖에 안 들린다고 할 정도로 소리가 커 관현악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소리가 큰 만큼 불기가 어렵다. 서를 물컵에 넣어 불린 다음에 입술로 혀를 꽉 누르고 세게 부는데, 그만큼 볼과 입술에 무리가 가서 숙달되지 않은 사람은 5분만 불어도 입술에 힘이 빠져서 불기가 어렵다. 그래서 같은 음을 짚어도 소리가 오락가락한다. 그래서 조율하기가 어렵다. 합주할 때 피리 음정이 조금씩 올라가서 불협화음을 만드는 예도 있고, 심지어 피리 독주는 음정이 맞는 독주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래도 정 음정이 맞지 않는다 싶으면 커터칼이나 동전 등으로 서를 깎아서 음정을 맞추는 예도 있다.
피리는 옛 고구려 고분인 중국 즙안 현 장천 1호 벽화에 그려져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피리는 5세기에 고구려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6세기 말 중국 수나라에 소개된 고구려 음악에 피리가 포함되어 있고, 서역 국가들의 음악에 피리가 편성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피리는 중국에서 전래된 악기가 아니고, 서역 계통 악기로서 5세기 중엽 고구려에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 관악기에는 가로로 부는 악기와 세로로 부는 악기가 있으며, 세로로 부는 악기는 ‘서가 있는 악기(reed, 피리와 같은 목관 악기의 부리에 끼워 소리를 내는 얇고 갸름한 조각. 대나무와 쇠붙이로 만들며, 이것이 진동하여 음을 낸다)’와 ‘서’가 없는 악기로 나눌 수 있다. 피리는 서가 있는 악기이며, 크기, 음악, 쓰임새에 따라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로 나뉜다.
종류로 향피리, 세피리, 당피리의 세 종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피리'라고 하면 향피리를 일컫는다.
1. 향피리
향피리는 말 그대로 향악에 편성되는데, 요즘 연주하는 곡이 대부분 향악화된 관계로 가장 많이 쓰이는 쪽이다. 유초신지곡, 취타, 표정만방지곡 등 대부분의 관현악과 관악합주에 사용된다. 관악합주를 일컫는 '사관 풍류'에서 '사관'은 원래 현악과 관악을 말하는 사관(絲管)이 아니라 향관(鄕管), 즉 이 향피리를 가리킨다.
향피리에도 종류가 있는데, 궁중음악을 연주하는 정악관, 산조를 연주하는 산조관, 민요를 연주하는 민요관, 창작 음악을 연주하는 신곡 관등 다양한 종류의 향피리가 존재한다. 창작국악이나 국악관현악에서 연주하는 향피리는 신곡관(Bb조, Eb조, Ab조 모두 연주 가능)으로 음역은 평취로는 Bb4에서 F6~G6까지 난다. 하지만 향피리에 옥타브 키를 달아서 음역대를 확장시키고는 하는데 많이 연주되지는 않지만 최대 F7까지 역취로 낼 수 있다고 한다.
2. 세피리
세피리는 가늘 세(細)자를 써서 세피리라고 불린다. 향피리를 더 가늘게 만든 것으로, 음량은 작다. 원래 세피리는 완전히 막은 상태에서는 Ab 4음을 냈지만, 현재는 조금 개량되어서 Bb4음이 난다. 이쪽은 천년만세나 중광지곡 등 주로 피리가 소리가 너무 많이 들리면 곤란한 현악 합주나 시조 및 가곡 반주에 쓰인다.
3. 당피리
당피리는 보허자나 낙양 춘 같은 당악 계 곡을 연주할 때 쓰는 피리로, 당악 음계(C조리코더)에 맞추어져 있는 피리다.
신기하게 당피리로는 정악 곡에서 역취(비청) 음을(비청) 연주할 수 있다. 음역은 평취로는 C5에서 D6이고 역취로는 Bb6까지 연주한다.
지공(指孔)이 9개이고, 『세종실록』의 그림에도 지공이 9개인데, 그중 2개는 뒤에 있다. 그러나 『악학궤범』에 의하면 상(上, 즉 仲呂)과 구(句, 즉 蕤賓)의 음은 모두 한 구멍에서 낼 수 있기 때문에 아홉 개의 구멍을 여덟개의 구멍으로 고쳐 만들었다.. 그 뒤로 오늘날까지 당피리의 구멍은 향피리와 같이 8개이다.
서양 노래와 곡을 연주하기 위해 피리를 연주할 때 피리의 소리는 색소폰과 비슷하다.
4. 특징
피리 류(流)의 관악기는 공기를 울림으로써 소리를 내는데, 음역이 좁은 소리는 신비한 느낌, 애절한 느낌을 주며, 낮은 음역의 소리는 가슴을 적시게 하는 묘한 힘을 가졌다. 또 김의 강·약, 지공(指孔)을 사용해 어떤 악기도 흉내 낼 수 없는 ‘서 치기(혀를 놀림으로써 공기의 압력을 이용하여 음정의 높고 낮음과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기법)’, ‘목 튀김(순간적인 호흡을 이용하여 만들어 내는 음 표현법)’ 등 독특한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미묘하게 옹근 소리가 의외로 서양 악기와 잘 어울리는 편이다. 특히 피아노로 반주했을 때는 정말 어색한 느낌을 느낄 수 없다. 다만, 피리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히는 것은 음역 문제인데, A플랫(㑖)에서 부터 높은 F(汰)까지 1옥타브 반이 조금 넘는 정도여서 현대 곡을 연주할 때는 어려움이 많다. 음역을 넓히는 것이 피리 악기 개량에 있어서 관건이다.
5. 비슷한 악기
외국 악기 중에서 비슷한 악기를 찾자면 한국 피리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추정되는 중국의 삐리(筚篥, bìlì, 관대는 관즈(管子), 서는 샤오피엔(哨片)으로 불리며 서(샤오피엔)의 재질은 한국 피리와 같은 갈대이지만 관대(관즈)의 재질은 대나무가 아닌 목질로 만든다.
한국이나 일본 피리의 서와는 달리 중국 피리의 서(샤오피엔)는 절대로 물에 불리지 않고 그냥 불게 되어 있다. 중국 피리의 서는 물에 담갔다간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고 입술로 무는 작은 힘에도 갈라져서 망가져 버린다.
터키의 십시(Sipsi)라는 악기도 한국의 피리와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다. 향피리와 똑같은 구조로 다만 터키에는 대나무가 없으므로 갈대를 이용해서 몸체와 서를 만들며 구멍이 앞쪽에 다섯 개, 뒤쪽에 한 개가 있다. 부는 법도 같으며, 마찬가지로 소리가 매우 커서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해도 십시 소리만 들린다는 단점이 있다. 다만 이 악기는 에게해 지방 특히 데니즐리(Denizli)를 중심으로 연주되는 악기라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들다.
6. 피리와 어울리는 음악
우리나라 창작 음악은 1970년대 서울시립관현악단의 창단으로 시작되었으며, 피리는 곡에 따라 주선율을 이끌어가는 역할과 서양의 브라스(brass) 적인 역할까지 하며, 다양한 음악을 소화하고 있다. 또 악기의 개량과 수용을 통해 폭넓은 음악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민속 음악 분야에서는 경기제의 밝은 느낌의 곡인 타령과 민요, 메나리조와 같은 음악에 잘 어울린다. 또 삼현육각(피리 2, 해금 1, 대금 1, 장구 1, 북 1) 편성의 무속음악에서 흥을 돋울 수 있는 리드 악기로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정악 분야에서 피리의 꿋꿋함을 강조하려면, 관악영산회상, 자진한 잎 같은 독주곡을 연주하기도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