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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소(太平簫)

by Vnuk 2022.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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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소

태평소(太平簫)는 대한민국의 전통 관악기이자 국악기로 속한다. 호적, 쇄납(嗩吶), 새납, 날라리라고 하며 두음 법칙을 적용하지 않는 북한에서는 '랄라리'라고 한다. 국악기 중 특히 음이 높고 음량이 큰 악기이다. 한국의 대표 악기 중 하나이다.

 

1. 역사

유래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다 다른데,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란에서 sorna, surna, zurna 등으로 부르는 악기까지 연결된다. 이 악기가 세계 여러 곳으로 퍼지면서 중국으로 들어와서는 쇄남(嗩吶, 병음: suǒnà)이 되었다가 한국으로 들어와서 태평소가 된 것이다.

 

당악기, 쇄납·호적(胡笛), 혹은 날라리라고도 한다. 나무로 된 관에 겹서를 꽂아 부는 악기이다. 소리는 화려하면서 진중하지 못한 면이 있다. 종묘제향악·대취타·종묘 제향악·대취타·농악에 쓰인다. 호적은 본래 서역 악기로 중국에서도 쓰였고 한국에서도 일찍부터 군악(軍樂)에 쓴 것 같으나,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유자나무·대추나무 등 단단한 나무의 속을 파서 길이 92푼의 관을 만들되 부는 쪽이 가늘고 나발 쪽이 약간 굵은 원추형으로 한다. 관대 앞에는 7, 뒤에 1개의 구멍을 뚫고 끝에는 놋쇠로 나발주둥이(벌렁이銅八郞)를 달고 위에는 놋쇠로 된 동구(조롱목銅口)를 달고 여기 갈대로 된 서()를 꽂아 본다. 동구는 6, 주둥이는 5치이므로 태평소 전체의 길이는 152푼이다. 벌렁 이의 안 지름은44푼이다.

터키에서는 주르나(zurna)라고 부르는데 같은 뿌리를 지닌 악기여서 그런지 태평소랑 구조가 똑같다. 한국 태평소와의 차이점이라면 터키 주르나는 나팔 부분까지 나무로 되어있고, 갈대로 리드를 만들며, 음역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널리 쓰는 주르나의 경우 파부터 시작해 기본적으로 1옥타브 분량의 지공(앞에 7, 뒤에 1)를 갖는다. 크기와 기본음의 종류별로 17가지 다양한 주르나가 있으며, 대부분은 전체를 목재로 만들지만 가지안텝 지방의 주르나는 한국 태평소처럼 구리 위에 주석을 입히거나 은으로 만든 팔랑을 끼워 만든다.

 

언제 국내로 도입하였는가는 기록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태조실록에서는 명나라에서 들여왔다고 하는데, 고려 때 정몽주가 한시에서 태평소 얘기를 한 걸 보면 태조 때 들어왔다는 얘기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또 정약용 아언각비에서는 원나라 때 들여왔다고도 한다.

 

2. 특징

 

몸통은 단단한 나무로 만드는데 아래로 갈수록 조금씩 굵어진다. 취구 부분에 동으로 만든 동구(銅口)가 덧대어 있으며, 몸통 끝에 소리를 키워 주는 나발 모양의 동팔랑(銅八郎)을 단다. 지공은 모두 여덟 개이고, 그중 제2공만 아래에 있다. 떨림판 구실을 하는, 갈대로 만든 작은 혀(대개 서라고 부른다.)를 동구(銅口)에 꽂아 본다. 서는 원래 갈대로 만들지만, 요즘에는 0.5cm 빨대를 사포에 갈아서 만들기도 한다. 서는 두 겹을 겹친 형태의 겹서이고, 태평소의 맑고 애절한 소리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태평소의 소리는 힘차고 민속의 심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멋이 있지만, 트럼펫보다 두 배 이상 큰 소리가 난다.

서양악기의 분류기준을 적용하면 더블 리드를 사용하는 목관악기가 된다. 지공은 뒤에 한 개, 앞에 일곱 개로 모두 여덟 구멍이 있다.

태평소를 만드는 법은 오매(烏梅)ㆍ산유자(山柚子)ㆍ대추나무ㆍ황상(黃桑)ㆍ황양(黃楊) 등 단단한 나무를 쓰는데, 관의 길이는 30못 되게 하여 위는 좁고 차차 퍼져 아래를 굵게 한다.

 

3. 조율

 

태평소는 Ab조 악기가 대부분이며 평취 음역은 Ab 4부터 Ab5까지이며, 역취하면 F6이나 연주자의 기량에 따라 BB 6까지 낼 수 있다. 물론 보다 높은음은 따로 음공을 짚지 않고 비성(鼻聲)으로 낸다. 이렇게 생각하면, 음역은 Ab4~BB 6이다

 

악기제작소에서 태평소 활용 용도에 따라서 뒤 지공 음정을 낮추거나 올려서 제작하기도 한다. 시나위용, 농악용, 관현악용으로 나눈다.

 

서를 가지고 연주한다든가 소리가 무척 크다든가 음지리가 비슷하다든가 하는 것은 피리와 대개 비슷하고, 또 악학궤범에서도 음률이 향피리와 비슷하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일단 현행 태평소는 향피리와 음정이 다르며, 서도 훨씬 작아서 입안으로 쏙 들어가는 점이 차이가 있고, 또 한 음지리에서도 음이 왔다 갔다 하는 피리와 달리 같은 포지션에서 여러 음을 내기 힘든 점도 차이점으로 꼽힌다.

태평소는 피리와 다르게 서가 매우 좁으므로 12 반음을 태평소가 소화하기는 다소 어려운 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960년에 북한에서는 태평소를 개량하여 기존 악기보다 긴 장새납을 만들어서 음역을 확장하고 악기의 단점들을 보안을 유지하고 빠른 연주와 12 반음을 위해 건(key)을 달아 편리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개량되었다.

 

무엇보다도 무척 크고 또 쾌활한 음색을 가지고 있어 군대에서 행진곡이나 신호용으로 많이 사용했다. 특히 대취타의 유일한 가락악기로도 사용한다. 또 풍물놀이에서도 매우 중요한 가락악기로 꼽힌다. 태평소 시나위라고 해서 다른 악기들로 치면 산조 비슷한 음악도 있는데, 태평소가 워낙 소리가 큰 악기이다 보니 다른 악기처럼 장구 반주를 하지 않고 꽹과리 장구 징 북 등 사물놀이 악기로 반주를 한다. 특이하게도 종묘제례악에서도 태평소를 넣는데, 군악 기로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인지 역대 왕들의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정대업의 소무, 분웅, 영관 등에서 태평소를 편성하고 경모궁 제례악에도 편성한다. 시나위 또는, 불교의 종교음악인 범패 등에서도 쓴다.

 

소리가 매우 크기 때문에 주로 야외에서 연주하고, 쩌렁쩌렁하게 사기를 돋우는 음색 덕분에 대취타 등 행진곡에서 많이 사용하며, 국악관현악처럼 수많은 악기와 큰 규모의 곡을 연주할 때도 독보적으로 뚫고 나오는 선명한 소리로 인해 그야말로 국악계의 백파이프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 백파이프와 일견 비슷해 보이는 음색 때문에 서양인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맛을 줘 그쪽에서 더욱 어필할 수 있는 국악기다. 그래서 세계 군악 대회 오프닝에서 연주하기도 하였다.

최근 국립국악원에서 태평소를 실내악용으로 제작하여 기존 태평소의 데시벨보다 3이 적은 실내악용 태평소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4. 팔음(八音)

팔음은 국악기 분류법이자 악기를 만드는 재료를 지칭하는 용어로 금(), (), (), (:바가지), (), (), ()을 가리킨다. 이런 분류법은 영조 때 편찬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상고 때부터 한 말에 이르기까지 문물을 정리한 책)에 기록돼 있다

꽹과리, 장구, , 소고 같은 타악기의 강인하면서도 투박한 소리가 무채색이라고 한다면, 태평소(太平簫)의 구성진 가락과 농음 이 더해지면 유채색으로 변한다고 할까. 태평소는 신명 나는 농악놀이에 감칠맛을 더한다. 팔음 분류법 가운데 ‘목’(木)‘목’(木) 부에 속하는 태평소는 농악이나 탈춤, 굿, 불교의식인 재(), 무용 반주 등에 널리 쓰이며 현재 대표적인 향토 악기로 불린다. 하지만 본래 태평소는 화란(禍亂)이나 질병을 물리치고 풍년이 드는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기원하는 의식에 쓰이던 악기였다.

 

5. 농음

운지법에 변화를 주지 않고 호흡의 강약을 조절하거나 악기를 움직여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국악기 특유의 연주 방식으로 조선 시대 왕이 궁궐 밖으로 행차하거나 군영의 총대장이 출입할 때 연주됐던 군악(軍樂) ‘대취타’(大吹打)에서 태평소는 홀로 선율을 담당했다. 선대 임금의 위패를 모신 종묘에서 연주하는 종묘제례악에서도 태평소는 중요한 악기로 쓰였다.

 

6. 기타

 

날아갈 듯 가벼우면서도 애절한 음색 때문에 민간에서는 날라리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태평소의 애절하면서도 신명 나는 독특한 음색에 현란한 가락이 더해져 최근에는 태평소 시나위라는 새로운 독주곡 장르도 생겼다.

조선 시대 들어 태평소는 우리말 표기법은 같지만, 한자표기가 다른 호적(號笛)’이라고도 불렸다. 국악기 가운데 가장 큰 음량을 가진 태평소는 먼 거리에 있는 부대원에게 신호를 보낼 때 쓰였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학자 이긍익은 조선 시대 야사를 정리한 책 연려실기술에서 태평소로 왜병을 물리친 일화를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는 태평소를 불 줄 아는 이들을 뽑아 붉은 옷을 입힌 뒤 왜병이 나타나면 산꼭대기에서 태평소를 불게 했다. 사방에서 갑자기 울려 퍼지는 태평소 소리에 왜병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를 놓치지 않고 붉은 옷을 입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곽재우가 의병을 이끌고 나가 왜병을 물리쳤다.’ 이로써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는 이름이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7. 시나위

 

이 악기는 목관악기로 쇄납(哨吶) 또는 호적(胡笛)이라고도 하며, 속칭 날라리라고도 한다. 조선 초기부터 국조오례의의 전정고취(殿庭鼓吹)세조실록의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정대업(定大業)에서 소무(昭武)ㆍ분웅(奮雄)ㆍ영관(永觀)장에도 썼고, 그 뒤에는 취타(吹打)ㆍ농악, 불가(佛家)의 재()에도 연주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 악기로 전라도 지방의 시나위를 불었던 사람은 방태진(方泰鎭)과 한일섭(韓一燮)이다.

1) 방태진의 시나위

1950년대 후반부터 여성 국극단의 악사로 따라다니며 국극의 장면이나 중요한 대목을 태평소의 즉흥 가락으로 옮기기 시작하여 그 나름대로 중심 가락을 만들고 서용석(徐龍錫)에게 전하여 주었다. 방태진의 시나위는 굿거리ㆍ자진모리장단ㆍ동살풀이ㆍ휘모리장단으로 짜여 있고, 가락은 그때그때 즉흥 가락이며 몇 개의 대표적인 가락들이 일정하게 나타난다.

2) 한일섭의 태평소 시나위

그 자신의 아쟁이나 판소리의 가락들을 태평소에 옮겨 불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한다. 그의 가락은 박종선(朴鍾善)ㆍ김동진(金東振) 등에 의하여 전해지고 있는데, 역시 대표적인 가락들은 몇 가락뿐이고 대부분은 즉흥적으로 연주되고 있으며 주장단은 굿거리와 자진모리장단이다.

3) 비교

방태진의 가락이 경쾌하며 엇먹고 나오는 가락이 많고 리듬을 타는 시나위라면, 한일섭의 가락은 한음 한음을 길게 끌며 선적(線的)인 아름다움에 치중하는 시나위라 하겠다.

 

8. 태평소와 피리의 차이

 

대대로 태평소는 구전 방식으로 피리 연주자들에게 전해져 왔다. 운지법이나 서를 이용해 부는 방식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악학궤범에도 태평소의 음역이 향피리와 같다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나 현재 전해지는 태평소는 초기 형태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국립국악원 피리 연주자 정운종 씨는 태평소는 향피리가 아니라 당피리와 운지법과 악기 형태가 비슷하다라며 연주에 자주 사용하는 음역이 향피리와는 서로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향피리는 첫 번째 지공이 관대 아래쪽에 있지만, 당피리와 태평소는 두 번째 지공이 관대 아래쪽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향피리는 한 옥타브 반 정도 음역을 사용하지만, 태평소는 배중려에서 청중려까지2옥타브에 걸쳐 좀 더 높은 음역까지 사용한다(접두사 는 가장 낮은 옥타브를, 접두사 은 가장 높은 옥타브를 나타낸다).

 

피리는 음높이에 따라 입술로 서를 누르는 세기를 조절해야 하므로 태평소보다 불기 어려운 측면도 있어 피리를 먼저 배운 뒤 태평소를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가의 권위와 위엄을 모두에게 알리는 동시에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는 악기 태평소. 태평소는 그 이름처럼 때로는 왜병을 물리치고, 때로는 농악 판에서 백성들의 신명을 돋우며 태평성대를 부르는 악기였다.

 

9. 향악기, 당악기

 

1) 향악기

향악기는 관악영산회상이나 유초신지곡 같이 우리 고유의 곡을 연주할 때 쓴다

2) 당악기

당악기는 종묘제례악이나 궁중에서 연례악(宴禮樂)으로 쓰이던 관악합주곡인 보허자같이 중국에서 전해진 당악을 연주할 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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