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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orchestra)

by Vnuk 202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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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서양음악의 집단적인 연주 형태 중 하나인 관현악의 연주를 주목적으로 하는 악단을 말한다. '관'과 '현'은 관악기와 현악기를 뜻한다.

"오케스트라"라는 단어는 오케스트라(orchestra, 관현악단(管絃樂團) 관현악곡을 연주하는 단체를 이르는 말이고, 영어 ‘orchestra’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연극 무대와 관람석 사이의 공간을 뜻하는 ὀρχήστρα가 어원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 무대에서 쓰이던 낱말로서 연극장 앞의 "춤추는 마당"이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오늘날 서양 고전음악에서 기악을 위한 앙상블이라는 특별한 뜻으로 쓰이고 있으며, 흔히 이와 같은 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곡 단체의 끝에 붙여 쓰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교향악단(심포니 오케스트라)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들 수 있다.

과거에 이 공간에서는 배우 외에 극의 진행에 도움을 주는 무용수나 합창단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 전통은 현대의 오페라에서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 관현악단 등 기악 반주 단이 들어가는 공간을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라고 부른다.

현대 관현악단의 기원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귀족 가정에 고용된 합주단과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 같은 중요한 행사를 위해 모인 기악 연주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7세기 당시 오케스트라의 구성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였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에서는 현악기 연주를 선호하였고, 독일 궁정에서는 금관 합주를 선호하였다.

현대에는 관현악단이라는 존재 자체가 일종의 ‘고급문화’의 척도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발상지인 유럽 등 서양뿐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에서도 서양의 그것을 그대로 따르거나 일정 부분 변화를 준 수많은 관현악단이 공존하고 있다. 심지어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처럼 관현악단 활동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음악과 인성 교육에 활용하는 때도 종종 있다.

1. 역사

1) 바로크 시대
17세기의 기악은 작곡가와 관현악단을 고용할 수 있는 재력 있는 왕실과 대귀족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으며, 작곡가들이 돈을 버는 유일한 수단은 교회 부유한 귀족 후원자나 고위 성직자에 고용되는 것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관현악단 초기의 사례로는 1607년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했던 만토바 공작이 고용한 몬테베르디는 공작의 후원으로 자신의 오페라 '오르페오'에서 플루트, 코르넷, 현악기, 트롬본 등의 악기를 사용하여 악단을 40명으로 편성하였고,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성당 악단 등 이탈리아 북부의 여러 악단에서는 이전의 악기 편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금관 악기와 목관 악기 편성을 도입하였다.

루이 13세의 궁정에는 한때 25명이기도 했던 '24 바이올린'(왕을 위한 24명의 바이올린 연주자)이라는 악단이 창설되어 곡을 연주하기도 하였다. 이 악단은 무용 곡의 연주 양식을 확립했고, 프랑스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자들에게 좋은 배움의 기회이기도 했다. 장바티스트 륄리는 루이 14세의 '기악 작곡가'로 임명되었을 때 '젊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이라는 자신의 악단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 악단은 전원이 최초로 단복을 입고 활을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호평을 받았으며, 곧 유럽 여러 나라의 모델이 되었다.

2) 고전파 시대
18세기 후반에는 전문 연주자들이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기 시작하였으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나 루트비히 판 베토벤처럼 궁정이나 교회에 귀속되지 않고 독립하여 생활하는 작곡가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모차르트 초기 교향곡을 보면 악기 편성이 현악기, 호른 두 대, 오보에 두 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1782년 궁정이나 교회에서 독립하여 자신의 이상이라고 할만한 관현악곡을 쓰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트럼펫, 팀파니도 편성에 들어갔다. 근대 교향악단의 핵심을 이룬 사람은 요제프 하이든과 베토벤이었으며, 1800년에는 관현악단의 단원은 평균 40명 정도로 구성되었다.

최초의 '근대' 교향악단 가운데 하나는 1742년에 요한 슈타미츠가 창설한 독일 만하임에 있는 칼 테오도어 공작의 궁정에서 만들어졌다. 만하임 관현악단은 50명의 명연주자로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당시 유럽 최대 규모였다. 단원들은 긴 '크레셴도'가 시작될 때 청중들을 위하여 순서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3) 낭만주의 시대
1850년대까지 관현악단의 규모는 점차 커져 1880년에는 단원이 100명이 넘는 경우도 많이 생겨났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이전의 작곡가들과는 달리 당시 관현악단의 악기만으로 작곡하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기존의 관현악 악기에 베이스 트럼펫과 '니벨룽의 반지'에서 연주되는 바그너 튜바와 같은 새로운 악기도 만들어냈다. 베를리오즈도 그러한 야심 찬 작곡가로서 '레퀴엠'에서 팀파니 16대로 연주할 수 있도록 작곡하였다. 말러는 거대한 규모의 곡을 작곡하였는데, 그의 교향곡 8번은 350명의 어린이 합창단뿐만 아니라, 7명의 독창자와 500명의 합창단과 증원된 관현악단을 위한 작품으로, '천인 교향곡'으로 불리기도 한다. 1872년 6월 17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 평화 기념제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지휘하고, 1000명의 연주자와 20,000명의 성악가로 된 당시 최대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등장하였다. 관현악단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비용도 증가한다는 것을 뜻하며, 더는 국왕의 비호를 받을 수 없었던 여러 관현악단은 부유한 음악 애호가들에게 의존하게 되면서 관현악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모을 수 있도록 많은 청중을 수용하기 위하여 더욱 큰 연주회장이 세워졌다.

1840년대에는 대규모 악단이 국내외를 불문하고 연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철도의 덕택으로 많은 사람과 화물이 마차보다 빨리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지방 사람들도 도시에서 오랫동안 즐기던 음악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음악에 관한 관심이 살아나게 되었고, 유럽의 여러 마을에서 아마추어 악단과 합창단이 생겼다. 또 교통수단의 발달로 리스트, 멘델스존, 파가니니 같은 작곡가와 독주자도 지방을 순회하게 되었다.

이로써 이전 세대의 음악이 부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8세기에는 그 시대의 곡만을 연주한 것과 달리, 19세기에는 거의 모든 연주회에서 베토벤, 모차르트, 헨델과 같은 세상을 떠난 옛 작곡가의 작품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2. 유형별 구분
1) 실내 관현악단 (체임버 오케스트라)(Chamber Orchestra)
실내악(chamber music)과 관현악단(orchestra)의 합성어로,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비교적 소규모로 편성되어 작은 크기의 공연장에서 주로 연주하는 관현악단을 일컫는 말이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교향악단 등 정규 관현악단이 대개 70~120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데 비해, 적게는 10여 명에서 많게는 30~50명가량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이올린 족 현악기들로만 편성되는 현악 합주단 중에도 실내 관현악단 명칭을 쓰는 단체도 있으며, 오르페우스 실내 관현악단을 비롯한 몇몇 악단들은 지휘자 없이 활동하는 때도 있고, 명칭에 심포니나 필하모닉이 같이 표기되는 예도 있으며, 이러한 형태의 악단들은 대개 대규모 관현악단의 단원들이 모여 결성한 경우가 많이 있다.

2) 필하모닉 오케스트라(Philharmonic Orchestra)
필하모닉의 어원은 '음악 애호가' 또는 '음악 애호'이며, 약 19세기부터 음악 애호가들이 주축이 되거나 주요 직위를 맡아 창립시킨 '필하모닉 협회(philharmonic society)'의 산하 관현악단으로 창단된 악단들을 기본적으로 일컫는다. 그러나 개중에는 시립 혹은 국립 관현악단 가운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악단들이 있으며, 헝가리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중국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그 예이다. 일본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약칭을 '필'로 해서 '베를린 필' 이나 '뉴욕 필' 등으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3) 교향악단 (심포니 오케스트라 Symphony Orchestra)
교향곡(symphony)과 관현악단(orchestra)의 합성어로, 19세기 들어 지급 능력이 있는 청중들에게 입장료를 받고 극장 등에서 개최하는 연주회 문화가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는데, 공연의 중심 곡목은 대부분 교향곡이었다. 이러한 교향곡의 비중이 악단 명칭의 표기에도 영향을 미친 경우다

4) 오페라 관현악단(Opera Orchestra)
오페라나 발레 등의 무대작품 공연 때는 대개 무대와 객석 사이에 있는 공간인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에서 연주하는 관현악단이 반주로 따라붙는데, 이러한 형태로 주로 활동하는 관현악단을 지칭한다. 대부분 해당 오페라단이나 오페라극장 전속인 경우가 많으며, 피트 내 공간이 무대보다 좁은 극장들이 많으므로, 현악 주자들의 숫자가 다른 정규 편성의 관현악단보다 적은 예도 있다.

오페라단의 비시즌 기에는 관현악단 단독 혹은 합창단과 함께 연주회를 개최하는 때도 있으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같이 빈 국립오페라 관현악단의 단원들이 자발적으로 연주회용 악단을 결성해 활동하는 때도 있고, 반대로 연주회 전문 관현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경우에는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제에서 오페라 관현악단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5) 청소년 관현악단(Youth Orchestra)
명칭대로 성인이 아닌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되는 관현악단이다. 악단에 따라 심포니나 필하모닉 등의 명칭을 함께 적기도 하며, 소규모인 경우 실내 관현악단 명칭이 병기되기도 한다. 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대학생 신분의 연주자들이 주축이 되는 악단도 청소년 교향악단에 포함하고 있다. 독일 청소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관현악단,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 서동시집 관현악단, 서울시 유스 오케스트라 등이 있다.

6) 그 외
필하모닉이나 교향악단 등의 명칭을 쓰지 않는 대신 상주 공연장 명칭을 악단의 이름에 같이 사용하는 때도 있으며, 왕립 콘서트허바우 관현악단이나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관현악단,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 취리히 톤할레 관현악단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더 단순하게 지역 명칭과 관현악단 두 단어만으로 표기하기도 하며, 파리 관현악단이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독일의 경우 관현악단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명사인 'Orchester' 가 아닌 'Kapelle'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주로 고전시대 이전에 왕이나 황제 등 군주들이 자신들의 직속 악단으로 거느리던 '궁정악단(Hofkapelle)'에서 파생된 것이다. 예로 베를린 국립 관현악단이나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바이마르 국립 관현악단 등이 있다. 이외에도 관현악단 명사를 생략하고 '필하모닉' 혹은 '심포니'만으로 정식 명칭을 정해 활동하는 악단들도 있으며, 뉴욕 필하모닉이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오케스트라 악기 배치도


3. 오케스트라의 악기 구성
1) 현악기: 제1 바이올린 (12~16), 제2 바이올린 (10~14), 비올라 (8~12), 첼로 (6~10), 콘트라베이스 (6~10), 하프
바이올린은 파트가 둘로 나뉠 정도로 현악 파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악단원들을 대표하는 악장(영어: concertmaster) 직책도 제1 바이올린 수석 연주자가 맡는다. 악기의 음역이 낮아질수록 단원 수가 적어지는 것을 알 수 있고, 연주자 자체의 수가 적기도 하지만 저음일수록 울림이 커서 인원이 많으면 고음이 다 묻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찰현악기들의 숫자는 흔히 짝수로 맞추는데, 연주자 두 사람이 보면대 하나를 같이 쓰기 때문에 무대 세팅의 편의도 관련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보면대 한 개를 같이 쓰는 두 명을 한 풀트(pult)라고 하며, 풀트는 독일어로 보면대라는 뜻. 하지만 지휘자의 취향이나 악단 스펙에 따라 홀수로 맞추는 경우도 물론 있다. 찰현악기 주자의 비율 조정은 연주곡에 따라, 또 지휘자의 재량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2) 목관 악기: 피콜로, 플루트 (2), 오보에 (2), 잉글리시 호른, 클라리넷 (2), 베이스 클라리넷, 바순 (2), 콘트라바순

3) 금관 악기: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현악기와 달리 관악기는 기본적으로 한 명이 한 분야를 맡기 때문에 엄청난 책임감이 있어야 하며 연주에 대한 압박감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관악기 주자는 자신이 그 소리를 못 내면 오케스트라가 전체가 그 소리를 못 내는 것이므로, 오케스트라 단원이면서 개개인이 솔리스트와 같으므로 오케스트라에서도 존재감이 현악기 주자보다 훨씬 크다.

4) 타악기: 팀파니, 큰북, 작은북, 트라이앵글, 탬버린, 심벌즈, 탐탐, 실로폰, 글로켄슈필 등
가장 인원수도 적고, 악단에서 맨 뒤에 물러앉아 있지만 적절한 시기에 음악에 강세를 자유자재로 더하거나 색채를 다양하게 하는 데 있어서 빠지면 많이 허전하다. 특히 팀파니는 거의 모든 클래식 관현악단들의 필수요소이며, 팀파니 주자는 타악기 주자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다.

5) 건반악기: 피아노, 오르간, 첼레스타, 하프시코드 등
피아노 등 건반악기 주자를 정식으로 단원에 포함하는 악단도 있다. 피아노 협주곡이 아닌 일반 관현악곡에 피아노가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20세기 초부터이며, 이때 피아노는 타악기(chordophone)로 분류되어 지휘자가 바라보는 기준 왼쪽에서 가장 뒤쪽 끄트머리에 배치된다.

거의 모든 음역과 모든 가락이 있는 곡을 오로지 피아노 한 대로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데,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샤를 발랑탱 알캉의 피아노 독주를 위한 교향곡/협주곡이나 프란츠 리스트의 대연주회용 독주곡(Grosses Konzert Solo, S. 176)이라는 곡들이 있다. 그들은 이 곡을 통해 교향곡이나 협주곡에서 드러나는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피아노만 사용하여 재현해 냈다.

다만 관현악과 어울리면서도 그와 동시에 결코 어디에 융화되지 않는 소리의 특이점 때문에 관현악에서의 사용이 까다로운 악기이기도 하다. 거기에 순정률로 연주되는 관현악과는 달리 피아노는 평균율로 조율된다는 차이도 존재해서 미분음 단위로는 음정이 안 맞는 문제도 존재한다.

4. 악기 배치 형식

오케스트라 배치는 일반적으로 현악기가 지휘자를 중심으로 무대 앞에 빙 둘러서 앉고 그 뒤에 차례대로 목관 악기와 금관 악기, 타악기가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배치 방법이다. 세부적으로는 각 악단과 무대 사정, 곡 성격, 홀의 음향 등에 따라 다양한 배치를 할 수 있다.

위의 배치법은 미국을 중심으로 20세기에 일상화된 배치법이고, 그보다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유럽, 특히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지휘자의 오른쪽에 제2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를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콘트라베이스를 악단 맨 뒤로 배치하는 때도 있고, 소리가 약해 대규모 합주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 하프를 악단 맨 앞 귀퉁이에 배치하는 때도 있으며, 오페라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하는 악단의 경우 지휘자 왼쪽과 가운데에는 현악기를, 오른쪽에는 관악기와 타악기를 배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편성 실험을 많이 했던 지휘자로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유명하다. 위의 악기 배치도는 한때 스토코프스키가 선호했던 탓에 '스토코프스키 배치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스토코프스키는 실제로는 매우 다양하고 실험적인 배치법으로 연주하였는데, 스토코프스키는 만년까지 선호하는 고정된 배치 없이 그때그때 다양한 배치를 시도하였다. 스토코프스키 사운드는 이러한 다양한 실험과 연구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관현악단 대부분이 자국에서 개량한 악기들과 서양악기들을 섞어서 편성하는 '배합 관현악'이라는 편성을 취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5. 악단원의 성비

서양에서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 오케스트라가 남성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서양 음악계에서 근대까지만 해도 여성의 음악 활동은 살롱 등 소규모 공간에서 사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직업으로써 음악을 하는 것은 남성들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오케스트라 역시 남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여성의 사회 활동이 시작되면서 여성 직업 음악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점차 오케스트라에 여성 단원들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은 여성의 사회진출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남자들이 모두 징집되자 이 때문에 여성들이 하기 힘들다고 여겨졌던 중공업 공장의 노동자까지 여성이 진출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음악계에도 큰 영향을 미쳐 20세기 후반에는 여성 단원의 비중이 급증하게 되었다. 21세기 들어 모든 단원이 남성만으로 고정된 악단은 거의 전혀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성 단원을 받은 역사가 얼마 안 되어서 여전히 여성 단원이 적다.
오케스트라에서 여성 단원이 늘어나는 가운데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두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꽤 오랫동안 여성 단원을 받지 않았다. 이 두 오케스트라는 전통을 매우 중요시하여 여성 단원뿐 아니라 남성이라 하더라도 자기 나라 출신이 아니면 단원으로 뽑는 데 매우 배타적이었다. 베를린 필의 경우 카라얀이 주장한 여성 단원 입단과 관련하여 큰 내홍을 겪은 후 8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여성 단원들이 입단하기 시작했다. 빈 필의 경우 베를린 필보다 좀 더 늦게 문호를 개방했다. 오늘날에는 많이 바뀌어 빈 필은 악장 중에도 여성 악장이 있고 베를린 필도 상당한 수의 여성 단원들이 있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에서는 여성 연주가들이 관현악단 활동에 상당히 많이 참여하고 있고, 심지어 모든 현악 파트의 연주가가 여성으로 채워져 역으로 여초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관현악단의 성비 불균형 사례는 음악인이라는 직업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음악인이 집단적인 합주력이 요구되는 관현악단 단원 활동과 개인의 역량이 두드러지는 실내악이나 독주자 활동 중 어느 것에 더 중점을 두는지, 관현악단 활동에서 급여를 받는 경제적인 면이 더 중시되는지, 아니면 곡 연주라는 예술적인 면이 더 중시되는지와 함께 사회학자들의 연구 과제로 종종 제시되곤 한다.

2020년 코로나 19가 시작되자 한때 오케스트라 공연이 한동안 아예 완전히 모두 취소되어 몇 달 동안은 전혀 볼 수가 없었고 재개된 이후론 방역지침으로 다른 연주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무대에 오르고 관악 연주자들은 마스크를 벗고 공연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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